모든 만남이 다 아름다운 건 아니지요. 특히나 오래 전에 만났던 사람을 다시 재회
했을 때 처음의 그 감성을 고대로 간직할 수 있다는 건 여간 행운이 아니고 말입니다.
이 영화는 바로 얼마 전 소개했던 영화 “Before Sunrise” 속편인데요. 첫 영화가 출
시 되었던 1995년으로부터 정확히 9년 후인 2004년에 똑같은 시간의 경과를 배경
으로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전 편에서 제시(에단 호크 분)와 셀린(쥴리 델피)은 비엔나의 기차역에서 6개월 후
재회하기로 하고 아쉽게 헤어졌는데요. 그 후 9년의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각
자의 삶을 살아왔다는 게 영화의 시작과 함께 암시됩니다. 그 동안 제시는 소설가
가 되었고, 셀린과 자신과의 추억을 바탕으로 쓴 소설 “이 시간”을 홍보하기 위해 파
리의 한 서점에서 ‘저자와의 만남’을 인터뷰 중입니다.
영화의 시작은 전편의 몇몇 장면을 보여주므로 두 사람 간의 추억을 관객들에게 상기
시키고, 여전히 제시가 셀린을 그리워한다는 걸 보여주죠. 조금 후 관중 속에서 모습
을 드러낸 셀린은 전혀 어색함 없이 제시에게 다가옵니다. 제시 역시 그녀를 반갑게
맞고 둘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고요.
둘은 서점을 나와 카페를 찾아 길을 걸으며 그 동안 쌓였던 이야기들을 풀어놓습니다.
아니 풀어놓는다기 보다는 서로에게 궁금한 것을 수줍게, 때론 과감하게 질문하면서
그 간의 시간의 간극을 메우려고 노력하지요. 둘 사이에는 사소한 어색함도 존재하
지만 그래도 잘 조율해가며 지나간 세월의 흔적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솔직한 감
상을 차분하게 펼쳐놓습니다.
아마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람을 오래도록 잊고 살다가 다시 만나본 경험을 가진 분이
시라면 이들의 심정이 어떠했을 것이며, 이들의 그 가슴설렘과 싸함이 어떠할지에 대
해선 다른 설명이 필요치 않으리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셀린은 끝내 제시에게 그 날
헤어진 후 6 개월이 지난 그 시간, 그 기차역에 다시 나타났었는지 물어보지요.
처음에 제시는 자기도 가지 않은 척 합니다. 셀린은 섭섭해 하면서 자신은 정당한 이
유가 있었지만(할머니 장례식과 공교롭게 겹쳤었다는), 왜 제시는 나타나지 않았는지
추궁하지요. 그러다 제시가 거기에 갔었고, 자신을 기다렸었다는 걸 알아내곤 무척
미안해하며 웃지요. 둘은 서로 주소조차 나누지 않았던, 그 시간 때의 자신들의 미숙
함을 발견하곤 또 어색하게 웃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간의 9년이란 세월 동안 자신들이 한 일과 가족 관계, 그리고 지금
의 사정, 느낌까지를 솔직하게 대화합니다. 마치 오래된 친구를 다시 만난 양 그들은
그렇게 편안해 보이며(아무래도 남녀 간에 완전 동성친구처럼 편한 마음일 수야 없었
을 테고, 또 서로 여전히 사랑의 불씨를 안고 있으니 더더욱 그러했겠지만 애써 노력
하는 듯 보였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듯싶네요.) 서로의 생활과 가치를 존중해주고, 좋
은 대화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제시를 공항까지 태워줄 자동차 안에서 셀린은 드디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터뜨립니다. 제시 또한 자신의 안타까움을 표출하면서 둘은 지나간 시간을 많이 아쉬
워 하는 듯 보입니다. 아니 분명히 그 둘은 지나가버린 시간을 되돌리고 싶을 만큼 서
로를 그리워해왔고, 여전히 그런 듯 보입니다. 마침내 공항에 가기 전 들른 셀린의 아
파트로 함께 들어가는 두 사람.
그 둘은 음악을 들으며, 또 셀린이 직접 만들어(이 노래는 진짜 셀린 역을 맡은 쥴리
델피가 만든 곡이라고 합니다.) 들려주는 노래에 묻혀 차라리 현실에서 벗어나길 꿈
꾸는 듯 보입니다. “이봐요, 당신 그러다 비행기 놓치겠어요.”란 셀린의 말에 “알아”
라고 답하는 제시. 그렇게 영화는 끝이 납니다.
사족으로, 에단 호크라는 배우가 연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고, 글도 쓰는 사람이란 걸
전작 “Before Sunrise” 를 보고 난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이 영화를 시리즈
로 만들었음 했다는 에단 호크의 말을 여기에 옮겨봅니다.
“누군가가 우리들에게 속편을 만들라고 했던 건 전혀 아니고 명백히 우리가 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그렇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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