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대 8가르마가 문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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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트랩'에 출연한 배우 '리차드 기어'. / 사진 제공 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
영화관에 자주 가지 못하고 갈 시간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꼭 내 돈 주고 표를 사서 극장에 갈 때가 있다. 바로 리처드 기어(Richard Gere)가 출연하는 영화가 극장에 걸릴 때다.
40대부터일 거다. 리처드 기어처럼 늙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건.
주름이 자글자글하게 잡혀도 그걸 두려워하지 않고 활짝 웃으면 멋져 보인다는 것을, 나이가 들면서 살짝 야윈다 해도 허리만 꼿꼿하게 펴고 다니면 풍채가 좋아 보인다는 것을, 똑같은 정장차림도 어떻게 입고 걷느냐 따라 천양지차로 보인다는 걸 난 리처드 기어를 통해 알았다.
그는 늘 반듯했고, 허리를 구부정하게 구부리고 걷는 일이 없었으며, 늘 웃고 있었다. 나도 그처럼 웃는 얼굴이 선하고 부드러웠다면 좀 더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소용 없는 상상을 해본 적도 있다. 남자가 나이가 들어도 멋있어 보일 수 있다는 걸, 난 그렇게 리처드 기어를 통해 배웠다.
머리숱 하나만큼은 남 부러워하지 않고 살았던 나다. 대충 비누로 감고 툭툭 털어 말려도, 남들처럼 탈모방지 에센스 같은 것 바르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 머리숱에 있어선 복 받고 태어났다.
그럼에도 나이 들수록 머리칼을 제대로 관리하기가 참 어렵구나 싶다. 흰 머리칼이 늘어나는 걸 염색으로 가려봐도, 어정쩡한 머리모양을 파마까지 하면서 다듬어봐도, 나이 육십 먹은 남자가 근사한 머리 모양을 갖추기란 참 쉽지가 않다. 소위 2대 8 가르마로 머리를 빗어본들, 무스를 발라 넘긴들, 나이든 남자 특유의 ‘기름진’ 느낌을 빼고 말끔한 모습으로 나선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드라마 ‘아내의 유혹’에서 연기하는 성격 자체가 트로트 가수가 되고 싶어하는 철 없는 아빠인지라 이번엔 과한 파마를 하고 TV에 얼굴을 내밀고 있지만, 내 모습을 볼 때마다 스스로 영 못 마땅하다. 나이 값 못하는 모습 같기도 하고, 원.
- ▲ 영화 '트랩'에 출연한 배우 '리차드 기어'. / 사진 제공 아이비젼 엔터테인먼트
올해 초 극장에서 모처럼 돈 내고 리처드 기어가 나오는 ‘트랩’이란 영화를 이쯤에서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염색을 전혀 하지 않은 백발을 젊은 사람처럼 짧게 치고 나온 모습이라니. 부럽다, 멋지다. 나도 저렇게 하고 다니면 이상할까. 혼자 그런 생각을 했더랬다.
아직은 자신이 없지만 나도 조금 더 나이를 먹으면 염색 약을 치우고 흰 머리칼 그대로 거리를 활보해보고 싶다. 백발을 잘 손질한 남자는 말을 하지 않고 있어도 ‘나이 먹어도 멋지지?’라고 웃으면서 말을 걸어오는 것 같다.
그래, 나도 몇 년 후엔 백발을 다듬은 모습으로 정장을 걸치고 다닐 테다. 누군가가 “염색도 안 하고 다니느냐”고 일갈하면 “리처드 기어보다 멋지지 않느냐?”고 뻔뻔하게 대꾸해줄 수 있는 용기도 지금부터 키워야겠다